시카고 시니어클럽이 만난 사람 2…종이 공예가 김기자 씨
‘황혼 속 노년의 아름다움’
지난 3월의 끝자락, 봄비가 쏟아지는 날 팰러타인에 사는 종이공예가 김기자 씨(88)를 만났다. 1934년생인 기자 씨는 딸 넷에 아들 하나, 5남매를 두었으며, 51세때부터 미국에 오려고 마음 먹었으나 인생의 하반기인 56세때에야 바로 밑 친동생인 간호사 기화자 씨의 초청으로 미국에 왔다.
어렸을 때부터 전남 강진에서 어린시절부터 독립운동가들이 운영하는 유치원을 다녔기에 ‘나라를 살리자’는 애국심을 누구보다 강하게 교육받고 자랐다. 특히 강진은 전남 서남주에 위치한 군으로 탐진강이 평야를 형성해 있다.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 푸른 들판이 펼쳐져 있어 참다래와 배, 녹차, 여주, 방울 토마토 등 잡곡들이 잘 자라고 천재학자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시절에 온갖 저술활동을 많이 한 역사적인 유적지로 유명한 곳이다. 유홍준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도 ‘남도 답사 1번지’로 알려진 곳으로 고려시대때부터 청자 도요지로 유명했으며, 봄이면 봄마다 인근 금곡사에서 벚꽃 삼십리 길 축제가 벌어지는 천혜의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또한 지난 3-9대선때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85%,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가 12%의 지원을 얻어 극렬한 민주당 텃밭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조선시대 유배지와 ‘남도답사 1번지’ 전남 강진 출생
한국 서예와 사군자협서 금상, 양장 기능사 1급까지 따내
당시 6년제였던 광주여고를 졸업한 뒤 바랐던 이화여대에 합격하지 못한 서러움으로 가출까지 시도했다. 그러나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뿐만 아니라 윤동주의 시 ‘하늘을 우러러 한 줌 부끄러움이 없기를’ 에 매료되어 누구보다 그렇게 되기를 소원했던 그녀는 배움에 대한 욕심이 컸다. 몇 군데의 학원을 열심히 다녔다. 금초 서예문화 학원을 다녔고 그 이후 ‘한국 서예와 사군자’협회에서 지난 85년 금상을 받기도 했고 양재학원도 다녀 ‘국가 기술 자격증’인 양장 기능사 1급을 따내기도 할만큼 매사에 손재주가 뛰어났다. ‘양재 기능사 1급’이 된 뒤에는 30세때인 64년부터 25년이나 계속 학원을 경영하며 후학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편물과 한복, 양재 등을 모두 가르치는 학원 원장이 되었고 호남여고, 중앙여고와 교도소 등에서도 가르쳤지요.”
당시 학생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눈물겹게 받았다. 교도소에서는 살인을 저지른 아이까지도 교육을 시켰다. 항상 교육 신조로 “지금 너는 내게 배우지만 나는 너한테 배우고 있다”고 늘 말했다.나중엔 전남대 행정과와 야간의 경영대학원에도 나갔다. 학부때는 120명 중 여학생을 5명뿐이었다. 늘 불쌍히 여기고 선한 마음을 가져 사람들에게 논도 떼어주고 밥도 나누어 주시던 시부는 농협에 나가셨는데 며느리에게 늘’농심이 천심’이라시며 ‘선한 마음’을 중시여기며 살도록 하셨다.
“젊은 시절 남편이 당한 사기사건도 교훈삼고 삽니다”
왕, 왕 할머니로 살며 라인댄스, 요가, 합창, 피아노 즐겨
그러던 어느 날, 현모양처로서 오직 믿고 의지했던 남편 김정섭 씨(2009년 작고)가 젊은 날 ’화순 온천장’에 투자했던 모든 돈을 삽시에 사기로 잃고 말았다. 당시 신문 지상에까지 알려질 정도였다. 집안 경제가 한 순간에 망하자 ‘죽어버리고 싶었다’고 지난 날의 고통스러운 괴로움을 말한다. 그렇지만 그럴 때가 아니었다. “아, 내겐 5남매가 있지”하는 강한 깨달음이 와서 어떻게든 살아갈 방도를 마련해야 했기에 최종적으로 ‘도미’의 방법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날 이후로 가는 곳곳마다 ‘희망’을 심는 일이 가장 큰 할 일이고 생의 목표가 되었다.
“그렇게도 착하고 어진 사람이 어쩌다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날렸으나 그것마저도 교훈으로 삼고 삽니다.”
5남매 중 큰 딸과 아들은 한국에서 살고 세 딸들은 모두 시카고에서 산다. 큰 딸 내외는 딸 둘을 낳았고 손자녀가 5명, 둘째 딸은 3자녀에 손주가 2명, 아들은 3남매를 낳았고….손자녀를 모두 합친 숫자를 헤아리다가 몇 분이 지나도록 다 못 헤아렸다. 그 중엔 전남대 내과 박사도 있고 정신과 의사인 손녀도 있다.시카고에는 셋째 사위인 임광택 씨( 공인 중개 회계사)도 있고 우체국에 다니는 공무원도 있다. 이민 생활 초기에는 로렌스에서 봉제공장을 다니며 재단을 하기도 했었고 평생 배운 서예로 목각을 만들고 사군자를 치기도 했으며, 지금도 많은 작품이 실린 노인센터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이제는 ’왕,왕 할머니’가 된 김기자 씨는 88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실린 노인센터에 출석하며 라인댄스,요가,합창, 피아노 등을 모두 즐긴다. 종이 공작품 만들기는 누구보다 뛰어나 벌써 본인의 영결 예배때 쓸 화환을 직접 다 만들어 집안에 모셔 놓았다.
본인의 영결예배시 쓸 화환까지 종이 공예로 완성
“90세되면 목숨있는 한 ‘나의 이야기’ 쓰고 싶어요”
내가 가더라도 서럽다고 울지말아라/마음이 아프다고 서러워 말아라/ 남편이 갔지만 울지 않고 살았다/ 한 송이 꽃도 사지 말고 고아원에 보내라/내가 만든 종이꽃이면 족하느니라
말씀마다 모두가 한편의 시였다. 사시는 곳 방방을 구경시켜 주셨다. 아름다웠던 과거의 모습들이 가득 차 있고 색색가지 털실로 짜서 꽃무늬로 만든 침대보며 액자마다 꽃으로 수놓은 종이 공예 작품들이 곳곳을 장식하고 있었다.
“명예와 지위, 돈도 필요없다. 열심히 사는 모습이 최고다. 혜숙아, 혜옥아 고맙다. 너희들이 열심히 살아줘서.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행복해라.”
새벽 별은 동편 유리창 너머 저 하늘에도 유난히도 밝다. 아직 동트지 않은 하늘에 반짝이며 빛난다. 어느 새 고이 쉬는 동안 잠에서 깨어난 것은 나를 찾는 별빛이었을까?(‘해가 저물어 가는 무렵’ 의 서두) 등등을 미루어 보건데 8순이 지나서도 이리 멋있는 필치로 신문사마다 ‘독자 투고’란에 글을 실을 정도로 문체도 뛰어났다. 뛰어난 미모때문인지 둘째 딸을 낳고나서도 어느 영화감독으로부터 출연 제의를 받기도 했다지만 “이제는 나 죽으면 모두 다 태워 달라”는 당부를 하고는 소식하며 살고 있다. 코로나도 좀더 정직하고 좀더 깨끗하게 살라는 신호로 받아들이며 집근처 부릿지 교회에 나가고 있다한다.
“드라마를 보면서도 손을 놀리지 않아요. 손이 벌벌 떨려 서예는 잘 못하지만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왼손으로 쓰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큰 족자와 그림도 대형보다 소형이 유행인 지금도 한울 전시를 위해 종이꽃을 만들고 있고. 90세가 되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나의 이야기’를 써 보려고 마음먹고 있어요.”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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